"수사도 소송도 막혔다"…4년 전 '전세사기'에 아직도 피눈물

입력 2023-03-26 09:19   수정 2023-03-26 10:37

“정부 지원책은 고맙지만, 와 닿지는 않습니다. 전 재산과 같은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서울 강서구 가양동 건물 해피하우스에서 발생한 전세사기 사건에서 피해자 100명가량이 전세보증금을 되찾는 데 4년째 난항을 겪고 있다. 20~30대 사회초년생이 대다수인 피해자들은 돈을 온전히 되찾기 위해 수년간 소송전을 벌였지만 법원에서 모두 가로막혔다. 정부는 긴급거처 지원?대출 우대혜택 제공 등 지원 대책을 내놨지만, 피해자들은 “와 닿는 해결책은 아니다”라며 고개를 가로젓고 있다. “2년 전 집주인을 경찰에 고소했지만 아직 수사결과도 나오지 않았다”는 게 피해자들의 하소연이다.
희망 갖고 법원 찾았지

피해자 A씨는 2019년 보증금 7000만원을 내고 이 건물에 입주했다. 보증보험 가입은 안 됐지만 “가양동 역세권이라 찾는 사람이 많아 보증금 반환에 문제없다”는 공인중개사 말을 믿었다. 그런데 반년 뒤 우연히 만난 다른 세입자가 “집주인이 전세금을 반환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알고 보니 A씨 이전에 같은 호실에 거주하던 사람도 전세금을 받지 못한 상황이었다.

A씨를 비롯한 세입자들은 집주인 부인 B씨에게 전세금 미반환 문제를 해결하라며 공동으로 항의하기 시작했다. B씨 부부는 2013년 이 건물을 ‘갭투자’ 방식으로 수억원대에 구매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매수 이후 전세금을 500만원 단위로 여러 차례 늘렸고, 일부 ‘반전세’도 전세로 전환됐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인근 마곡지대 개발로 가양역세권의 매력이 낮아지면서 다음 세입자를 제때 구하는 ‘전세금 돌려막기’에도 차질이 빚어졌다.

이 때 B씨는 “새로운 집주인이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며 C씨를 데려왔다. 그러나 세입자들은 신탁계약으로 건물 관리를 맡은 C씨에게도 전세금을 되돌려 받지 못했고, 양측의 매매계약은 무산됐다. 건물을 맡긴다는 신탁계약을 맺은 탓에 누구한테 전세금을 청구해야 하는지도 모호해졌다.
法, 공인중개사 상대 소송도 기각
피해자들은 신탁 관계를 깨야 실소유주인 임씨로부터 돈을 받을 수 있다고 보고 2021년 소유권말소등기소송을 냈다. B씨가 경매가 아닌 정상가에 건물을 팔도록 해 그 돈으로 보증금을 돌려받겠다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법원은 피해자가 B씨가 아닌 C씨와 보증금 반환 문제를 놓고 한동안 논의한 이상, 피해자 측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지난해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수개월 동안 C씨가 임대인의 지위를 승계했음을 전제로 행동했는데, (입주민들은) 임대차보증금 반환 의사와 능력에 의문이 생기자 지위 승계를 인정할 수 없게 됐다는 취지로 보인다”며 기각했다. 만약 신탁계약에 불만을 느꼈다면, 이를 알게된 즉시 이의를 제기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2심을 맡은 서울고등법원도 지난달 원심판결을 유지했다.

피해자 일부는 공인중개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도 제기했다. “보증금 반환에 문제가 없다는 설명에 속았으니 사기로 인한 피해를 배상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소송 역시 지난해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기각됐다. 계약서에 “임대인에게 실융자금액 및 건물 전체 임차보증금 등의 자료 제출을 요구했지만 제출 불응하였고, 이를 임차인에게 설명했고 임차인도 이를 확인했다”고 적혀있다는 점이 공인중개사에게 책임이 없다는 근거가 됐다.

이 문구와 관련해 피해자 측은 재판에서 “공인중개사가 이 건물을 소개하며 ‘건물주인이 건물을 여러 채 가지고 있어 문제가 없다’ ‘월세와 전세 비율이 5:5에서 6:4 정도’라며 안심시켰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경찰 "조만간 검찰에 송치"

피해자들은 2021년 B씨 등을 사기 혐의로 강서경찰서에 고소했지만, 수사결과도 나오지 않았다. 경찰은 구속영장도 여러 차례 신청했지만 모두 기각됐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조만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형사처벌이 이뤄진다고 해도 B씨 등에게 남아있는 돈이 없다면 전세금을 돌려받기 어려울 수 있다.

2020년 일부 피해자들이 신청한 경매절차도 다른 피해자의 요청으로 중단돼 있다. 이 건물에는 20억원에 달하는 근저당이 선순위로 잡혀 있어, 후순위 피해자의 경우 경매로 낙찰되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55가구 이상의 세입자들이 이 건물에 거주하고 있는데, 후순위자의 경우 경매 낙찰 시 돈을 받지 못한 채 퇴거해야 할 수 있다.

정부는 최근 전세사기 피해자가 ‘셀프 낙찰’ 받더라도 무주택 자격을 부여하는 등의 대책을 내놨지만, 건물이 통째로 경매에 넘어간 이 사건의 경우 적용받기가 어렵다. 현재 건물 소유주와 수탁자 모두 건물 관리에는 손을 뗀 상태다. 이 건물에서 경비 업무를 하는 이일복 씨는 “거주하고 있는 세입자들이 직접 돈을 모아 월급을 주고 있다”고 전했다.

김예림 법무법인 심목 대표변호사는 “거액의 돈을 남에게 맡기는 전세제도가 유지되는 한, 주택경기가 나빠질 경우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사기사건”이라며 “전세제도는 기본적으로 사인 간 거래이기 때문에 폭넓은 피해 지원을 기대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김 대표변호사는 “건물주의 근저당, 체납, 전입세대 열람 등을 통해 꼼꼼히 확인해 사기 당할 가능성을 계약 전에 줄이는 방법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최한종 기자 onebel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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